인천 서구 시천동 장모루 전설 (퍼온글)
옛날에는 인천 서구 시천동(현 검암역 부근)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시천동은 고려시대 때부터 삼남지방의 쌀을 개경과 한양으로 운송하는 요충지로 '장모루'라는 지명으로 불리어 왔다. 이곳에는 '구슬원'이라는 숙박시설과 '발아장'이라는 쑥시장이 번창하여 전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서 깊은 장소이며, '장모루 아름다운 처녀'에 관한 설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시천동은 고려 때 장모루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남부지방에서 고려의 왕도인 개경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많은 사람이 하루를 묵어가는 장소였다고 한다. 하루는 전라도에 사는 대가집 아들이 과거를 보러 가던 도중 이곳 장모루촌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장모루 여각 주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젊은 선비는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청년선비는 과거를 이틀 앞두고 개경으로 떠나 과거시험에 응시 하였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 청년은 되돌아 오는 길에 또다시 장모루 여각에 돌아와 여각주인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각 주인은 딸과 선비를 아무리 말리려고 했으나 선비는 막무가내로 "딸을 사랑한다"고 하며 "장모루촌에서 살겠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방을 하나 내줬다.
선비는 장모루촌에 거주하면서 여관의 잔심부름을 하며 딸과 사랑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선비집에서는 수개월이 지나도 과거를 보러 간 둘째아들이 나타나지 않아 수소문 끝에 아들이 '장모루촌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보냈으나 고집이 센 동생은 형의 설득에도 막무가내였다.
형은 고심 끝에 아름다운 처녀를 설득을 했다. 그래서 처녀는 선비 총각과 가락지를 나눠 끼고, 형을 따라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모루촌 여인은 매일 뒷뜰에 정한수를 떠놓고 낭군의 과거 합격을 빌었다. 선비 총각은 보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3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여 다음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그러나 대가집에서는 평민출신인 여인과 결혼을 하는 걸 반대하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총각 선비는 부모님과 형님께 말씀드리기를 "본인을 위해 3년동안 정성을 다하여 과거시험 합격을 빌어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냥 내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수개월 동안 아버지와 형님을 설득하여 끝내 장머루촌 아름다운 여인과 혼인을 한 후, 아들 딸을 낳고 살았다는 아름다운 설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