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강화 정족산성과 전등사(2023.2.26)

홍길동이 2023. 2.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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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저만치 와 있는 가운데  남녘에는 복수초나 노루귀 등 꽃 소식이 전해진다.
오랜만에 강화 정족산성을 한바퀴 돌고 전등사를 둘러본다. 전등사에서는 이영섭 조각가의  작품  어린왕자를 보는 기쁨도 쏠쏠하다.  정족산성이나 전등사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즐거움도 더해진다.

정족산성ᆢ소원빌기ᆢ

정족산성ᆢ

어린왕자ᆢ대웅전이 있는 마당에 설치되어 있음(조각가  이영섭의 작품)

찻집앞에 세위져 있는 어린왕자ᆢ

대웅보전과 나부상

(정족산성)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산성. 사적 제130호이자 병인양요의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산성 북쪽 면에서 황해도와 개성 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원래 정족산성은 원래 이름은 삼랑성(三郞城)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정족산에 쌓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정족산성은 조그마한 산성으로 별로 유명하지 않다. 오히려 산성 안에 있는 전등사(傳燈寺)가 강화도 내에서 유명했다.

흥선대원군이 1866년 병인박해로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을 처형하자, 프랑스 정부는 화가 나서 해군 특전대 약 6백여 명을 조선에 파병하였다.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에서 한성근이 이끄는 조선군과 맞서 사상자 27명을 내는 등 피해를 입지만 결국 강화도에 상륙했다. 양헌수 장군은 휘하 군사 120명을 이끌고 덕진진을 통해 유일하게 함락되지 않은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수성장(守城將)이 되었다. 프랑스군은 이를 알고 병력 60여 명을 보내었다. 양헌수는 사거리가 짧은 조총의 단점과 프랑스와의 전력차를 인정하고, 총을 잘 쏘는 포수들을 입대시키고 프랑스군이 성에 가까히 접근하면 쏘는 근접사격을 도입했다.

마침내 프랑스군이 성 가까이에 접근한 순간 근접사격을 가하자, 프랑스군은 전사자 6명에 부상자 35명이 생기는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당시 프랑스 병력들은 놀러가는 기분으로 음식을 잔뜩 싣고 방심한 채로 정족산성에 접근하다가 당한 것. 프랑스 장교들은 빡이 쳐서 정족산성을 다시 공격하자고 건의하지만, 지휘관 로즈 제독은 정족산성을 함락하기에는 병력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강화도에서 철군하라고 명했다.

상기 정족산성 안의 사찰 전등사에는 과거 정족산 사고(鼎足山 史庫)가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다. 정족산을 지켜냄으로써 사고도 함께 지킬 수 있었다. 정족산성 전투의 공으로 양헌수는 승진하여 나중에는 공조판서까지 되었다. 조정은 이 전투를 기리기 위해 1873년 정족산성 입구에 승전비를 세웠는데, 훗날 인천시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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