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천 자유공원에서 만난 초롱꽃(2023.5.26)

홍길동이 2023. 5. 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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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  청나라 와 일본 조계지 계단 옆에 초 롱꽃이 예쁘게 폈다. 어렀을때 시골에서 빨갛게  익은  딸기를 싸서 먹었던 기억이 새 롭다.

초 롱꽃ᆢ
석정루ᆢ인천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서예가 동정 박세림이 섰다. 60년대 전국 각지 전망 좋은 곳에는 팔각정이 유행처럼 섰다. 마치 기성품 같았던 팔각정(八角亭)은 지붕을 여덟모로 지은 정자(亭子)다. 인천 자유공원에도 1966. 6.23일 팔각정이 세워졌다. ‘석정루((石汀樓)’의 이름을 지닌 이 팔각정은 응봉산이 바다로 내쳐 달리다 급정거를 하며 깎인 지점에 그림처럼 서 있다. 2층짜리 석정루는 당시 목재업과 조선소로 큰돈을 벌었던 이후선 씨가 지어서 기증했다. 30여 년간 자유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지켜온 데 대한 보은이었다. 누각명은 주변의 강권으로 자신의 아호를 따 '석정'(石汀)이라 했는데 당대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서예가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선생이 현판을, 우초(又礁) 장인식(張仁植) 선생이 현액을 썼다. 또 제물포고에서 유수한 평론가와 시인들을 길러낸 시인 최승렬(崔承烈) 선생이 '기림'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제영(題詠)을 남겼다.

석정루 2

연오정 ᆢ검여 유희강의 글씨다. 유희강 柳熙綱 인천 출신. 호는 검여(劍如)·소완재주인(蘇阮齋主人)·시계외사(柴溪外史)·불함도인(不咸道人)·몽학선관주인(夢鶴仙館主人). 가학으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37년 명륜전문학원을 졸업한 뒤 북경(北京)에 가서 서화 및 금석학을 배웠다. '46년 귀국한 뒤 인천시립박물관장·인천시립도서관장 등을 역임하고, 인천교육대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62년서울 관훈동에 검여서원(劍如書院)을 열어 서예연구와 후학지도에 힘썼으며, 홍익대학교 등에 출강하였다. '68년 뇌출혈로 인한 오른쪽 반신마비를 극복하고 왼손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인간승리의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53년 제2회국전에 입선, 제4회에 특선하고, 제5·6회 문교부장관상을 받은 이래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지냈으며, '59년 제1회개인전을 비롯한 6회의 개인전과 한국서예가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현대서예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글씨는 전·예·해·행서에 두루 능하였고, 초서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으며, 전각과 그림에도 능하였다. 전·예서는 등석여(鄧石如, 1743∼1805 : 중국 청나라의 서도가)를 토대로 하였으며, 해·행서는 처음에는 황정견(黃庭堅)과 유용(劉鏞)을 섭렵하다가 차차 북위서(北魏書)를 가미하여 웅혼(雄渾)한 기운이 담긴 서풍을 이루었다. 금석문으로 경기도 안산시의 「성호이익비명(星湖李瀷碑銘)」이 있다

벚꽃 둘레길 ᆢ

이슬맺힌 포도 잎ᆢ

# 인천 자유공원  # 석정루  # 연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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