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좋아...

계양산에서 (2019.4.21)

홍길동이 2019. 4. 21. 21:56

 

뿌리와 흔적... 

<뿌리에 관한 시 모음> 이생진의 '나무뿌리' 외
 
  작성자: 정연복   /  작성일 : 2011-01-08 11:48

<뿌리에 관한 시 모음>  이생진의 '나무뿌리' 외


( 나무뿌리 )
  
나무는 뿌리를 숨기는 수줍음이 있다
사람들이 낮에 성기를 숨기듯 말이다
아니 나무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러하다
사람은 나무보다 철이 늦게 든다
(이생진·시인, 1929-)


( 뿌리 )

이 푸른 잎을
제 진심이라 생각지 마시고
이 늘어진 가지를
제 기쁨이라 생각지 마소서
그대 눈에 마냥 푸른 빛 보이려고
그대 마음에
마냥 우거진 행복만을 비추려고
이렇게 흙빛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속이 탔습니다
(최영철·시인, 1956-)


( 뿌리를 위하여 )
    
저 고요의 세계를 보아라
싸늘하게 어둠을 움켜쥔
저 청동의 몸짓을 보아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람도 멈추는 곳
그곳 하늘엔 달도
별도 하나 없으리라

시커먼 고요 속
어둠마저 잠재우며
온 세상 근육을 일으키는
저 우람찬 몸부림을 보아라
(김지헌·시인, 1956-)


( 뿌리)

누구의 지팡이가 5백년 사는가
나무는 목까지 땅에 묻고 산다.
나무는 다리만이 뿌리가 아니다.
천 갈래 만 갈래 팔다리가 가지쳐서
흙을 움켜잡는 손발,
그것이 다 뿌리다.
땅 위에 머리만 내밀고
머리로만 사는 나무 어디 있나.
땅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승을 움켜잡는 질긴 근성이 있다.
뿌리가 있다.
지팡이가 5백년 사는 이유 이것 아닌가.
(김명배·시인)


( 뿌리 )

뿌리들이
땅 속에서 길을 내며
뻗어 간다

땅 밑 수백 미터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처럼
어둠 속에서
물을 찾아 밥을 찾아
바위 틈 돌 틈도 비집고
아래로 아래로 뻗어 간다

뿌리들이 찾아
쉬지 않고 땅 위로 올려 보내는
물과 밥
나무 몸통 속의 길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간다    
맨 꼭대기 아슬아슬한 곳까지
  
땅속에 뻗어 있는
굵고 가는 수많은 뿌리들
빌딩 바닥에 깔린 철근처럼
얽히고 설키어선  
한 그루 나무를  
튼튼히 떠받친다
(권오삼·시인)


( 뿌리 )

어둡다고 보채지도 않았지만
밝음을 애원하지도 않았다
두더지 같은 생활로 한세월을 용트림하며
흙의 옷으로 단장하였어도
자신 없는 생은 싫었다

모세혈관 같은 나의 하얀 살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펌프질로
그 검은 벌판에서
낙엽을 만들었고 기둥을 다듬었다

어두움은 밝음을
지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존재는 까맣지만 실체는 하얀 빛임을,

실타래처럼 얽힌
잔 수염을 통하여 커다란 집의 원천도
아름다운 안락의 공간도 가능했으니
쉬임없이 줄기에 영양소나 공급하리
(반기룡·시인)


( 뿌리 )
    
식물이 그 뿌리를
한사코 땅속으로 뻗는 것은
용암을 빨아들이기 위함이다.
그 뜨거운 욕정을 달랠 길 없어
꽃으로,
잎으로 피는 나무는
푸른 하늘을 유혹하지만
그의 입술에 와 닿는 것은
찬 이슬뿐이다.
인간이여,
잠든 에로스를 건드리지 마라,
스스로 타서
떨어지는 낙엽이 될지언정
분출하는 용암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찍이 하늘과 이별하면서
대지 깊숙이 묻어둔
神의 욕정,
땅은 잠들어 있는 그의
에로스다.
(오세영·시인, 1942-)


( 풀뿌리의 힘 )

불구덩이를
지나온 기왓장
        
그 불기운을 빨아올려야겠다고
대웅전 기와지붕 위에서 풀들이 자란다

(뿌리가 들린 生은
불기운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저 허공에 떠있는
풀뿌리의 힘으로

부처의 이마엔 주름이 없다
(이정록·교사 시인, 1964-)


( 물의 뿌리 )

물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흐른다
끊임없이 사라져 가는  
기억의 경계를 넘어
낮게 더 낮게
반딧불처럼 자유로이 춤춘다
알몸의 뿌리들
저 아카펠라의 경배와
현기증처럼 일어나는
수평과 수직의 근원
그 비밀의 잔상을
나를 비우지 않고서야
어찌 바라볼 수 있으랴
생의 질곡을 돌아
흔들리며 흘러도
허공을 가로질러
하늘로 파고드는 물의 뿌리들
(차수경·시인, 충남 서산 출생)


( 뿌리)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르는 물새들
우아한 몸짓으로 헤엄쳐가지만
물밑으로 부지런히 노를 젓고 있다네
물속에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네

산을 오르다 보았네
밑동이 절반은 파여 나간 나무 한 그루
그를 받쳐주는 세상이 휘청거려도
허공을 꽉 움켜쥐고 있었네
나무가 풀어놓은 천진한 이파리들
아무것도 모른 채 햇빛을 쏘다니고 있었네

서슴없이 세상을 등지지 못하고 저 혼자
앓고 있는 나무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세상이 힘들면 나도 힘들다고
나도 허공을 꽉 움켜쥐었네
(최선옥·시인, 강원도 양구 출생)


( 뿌리 )

바람을 잡으려 했지만
바람은 나를 잡고 만다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바람은 날 삼켜 버리고
미숙아에 가까운 내 인생을
잡초처럼 강하게 가꾸어 가라고
등을 떠민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황토 위에 제 멋을 자랑하지 못한다

푸르른 빛을 발하고자 더욱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의 근성처럼
나 또한 내 인생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자 오늘도 인내한다
(김지나·시인, 전북 전주 출생)


( 사람의 뿌리)

사람은 어찌하여
사람한테 뿌리를 내리는가

달도
해도
땅도
그 큰 몸짓을 천공에 띄워
제 갈 길을 찾아가는데
사람은 무슨 두려움으로 자유롭지 못하는가

사람의 속성에 익숙하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
허기지게 한다
아프게 한다
기다리게 한다
막막하게 한다
그리워하게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이 사는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사랑하는 일은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오양심·시인)


( 뿌리가 나무에게)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네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이현주·목사 시인, 1944-) 


(희망의 뿌리는 어디에도 내린다 )

새 병원 건물 6층과 7층 사이
매끈한 몸통에 푸른 반점
새파란 풀잎이 돋았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기계의 판정만 믿는 초현대식 완벽한 몸에도
틈새는 있었던 거다
씨방을 안고 날던 홀씨 하나의 눈에
포착된 그 틈새만큼
과학에도 사람의 냄새 있었던 거다
하루, 86400초 매 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날 선 몸에  
물구나무로 허공을 살아내는
한 가닥의 뿌리
오늘도 절망의 늪에서 건져진 사람 몇이나 될까

이제 내게 나있는 틈새를 부끄러워는 않으리
이 자리 없이 네가 어찌 내게 뿌리내릴 수 있으랴
바로 네가 들어설 틈새, 그 어느 곳인들
푸름이 익을 땅, 녹색의 삶 아니랴.
(강학희·시인, 미국 거주)

 


 

 

 

 

 

보수중인 계양산성.... 

다정한 한쌍.... 두사람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아마도 "봄" 에 대한...  

안개가 가득한 계양산...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진달래 한송이... 

누군가가 버리고 간 벗곷 한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