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좋아...

설악산 백담사-대청봉 산행 (2034.10.4)

홍길동이 2024. 10. 5. 19:35

그동안 외설악에서는 공룡능선 3번, 대청봉 3번, 천불동 계곡  울산 바위 등 산행을 한 적이 있으나 내설악은 용대리 등을 방문한 적은 있는데 직접 산행을 한 적이 없어 큰 마음먹고 백담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용대리에서 백담사 가는 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한 후 07:20에 산행을 시작한다. 코스는 영시암, 수렴동 계곡을 거쳐 봉정암에 도착한다. 여기서  공양 음식과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내려갈까 고민하다가 집사람이  대청봉까지 가보자 한다. 백담사에서 용대리 가는 마지막 버스가 19시에 있어 고민하다 대청봉에서 14까지 하산하면 백담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청봉으로 향한다.  가을 날씨라 그런지 주변 뷰도 너무 좋다. 대청봉 도착 후 20분 정도 줄을 서서 인증숏을 하고 부지런히 하산한다. 봉정암 도착 후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원점 할까 하다  기왕이면 안가봤던 곳, 오세암 쪽으로 우회하여 하산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길은 경사는 물론 내리막 오르막이 7번이나  반복된다. 하산길임에도 난이도가 너무 높다. 오세암에 도착했을 때 17:10, 도저히 백담사에 19:00까지 못 갈 것 같다. 그래서 오세암에 부탁해서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06:20에 출발 백담사에 도착하니 09:00이다. 어제 4만 여보, 오늘 1만 4천 여보 힘든 백담사ㅡ대청봉 산행이었다.  일부를 제외하고 단풍은 아직이다.  
수렴동 계곡은 연속되는 폭포에, 맑은 물 설악산 경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

07시 용대리 버스정류장 대기 줄

백담계곡 안개가 서서히 하늘로

                    (영 시 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709년(숙종 35년)에 창건해 6년간 머물렀다. 그 뒤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1691년(숙종 17) 설정(雪淨)이 승당과 비각을 중건했다. 1760년(영조 36) 석존불을 개금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주지 이기호(李基鎬)가 중수했고, 1950년 6·25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단풍이 든 모습

         이상하게 생긴 뿌리

쌍폭.. 오른쪽이 남성. 왼쪽이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봉 정 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소청봉(小靑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이 창건한 암자이다.

            봉정암 점심 공양

봉정암 뒤 바위

     봉정암 커피도 무료 공양

소청봉으로 가는 도중 만난 바위

              구절초와 나비

중청봉과 중청산장 리모델링 공사

헬기가 공사 자재를 이동하고 있다

(대청봉) 이 중에서 청봉이라는 이름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 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고도 한다. 대청봉은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 백록담(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공룡릉ㆍ화채릉ㆍ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ㆍ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ㆍ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1,665m), 끝청봉(1,610m), 소청봉(1,581m)이 있다. 대청봉은 일출과 일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강한 바람,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7월이면 진달래ㆍ철쭉ㆍ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1,708m 대청봉'이라고 새겨진 정상 표지석이 있다. 정상까지 오색 방면, 한계령 방면, 설악동 방면, 백담사 방면의 코스가 있는데, 오색 방면(남설악 탐방지원센터)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5.0km(4시간) 거리의 코스가 최단거리 코스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금강산~향로봉~진부령~미시령~북주릉~공룡릉~소청봉~중청봉을 거쳐 이곳 대청봉을 지나 끝청봉~한계령~점봉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지리산까지 연결된다.

     탑 위 언덕에서 본 뷰 입니다.

봉정암 사리탑.. 여기서 보는 뷰도 끝내준다.

                   (오세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하는 백담사(百潭寺)의 부속 암자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으며, 1548년(명종 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이며, 유명한 관음 영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정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 뒤 1888년(고종 25)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하였다. 당시 법당을 2층으로 짓고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곡물에 반영된 소나무

         백담사 앞 돌탑

백담사 금강문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에 있는 사찰이다. 7차에 걸친 실화가 있었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김며 이름을 바꾸었는데, 정조 때 백담사로 확정되었다. 근대에 한용운이 주석하였다.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가운데 불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아미타불.. 목재에 불상을 조각한후 도금

이 저고리가 아미타불 복장 유물이라 함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과 인연이 깊다.

           백담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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