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석●
① 봉산 표석
위치 : 동로면 적성 생달 명전리 경계에는 높이 1077.3m의 황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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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封山)이라함은 왕실 및 정부(政府)의 필요에 따라 궁전, 자궁(자宮:임금, 왕대 비, 왕세자들의 유해를모시는 관(棺), 선박 등의 용재(用材)를 제공하기 위하여 수목의 식재에 가장 적당한 지역을 선정 하여 정부가 그 구역을 직접관리 보호하여 온 것을 말한다. 동로면 적성 생달 명전리 경계에는 높이 1077.3m의 황장산이 소재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나무는 재질이 우수하여 봉산(문경현지에 강희경신(1680년)에 시봉되었다고 기록)되었고, 이봉산표석은 동로면 간송리 하정학(河正學)씨가 발견하여 1990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명전리 마을입구 하천변제방 위에 세워져있다.
② 석항리 효자고유완 유허비
석항리 효자 고유완 유허비 고유완(高有完)은 개성인(開城人)으로 어머 니의 장례때 스스로 흙을 날라 정성껏 봉분을 이루었고 3년동안 매일 3 번씩 성묘를 하여 절하던 곳이 움푹 패였다 한다. 하루는 호랑이가 봉분 위에 앉아 있는데 유완이 태연히 무덤에 절을 올리자 호랑이가 고개를 숙여 사라졌다 한다. 나라에서 가의대부(嘉義大夫)의 벼슬을 내렸다. (예 천군 읍지)
③ 적성리전승비 및 순국위령비
戰鬪前의 槪況 중공군이 1951년 1월 1일 38선 부근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전개함으로써 아군은 두 번째로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안동선까지 밀리고 있었으며 북괴군 제10사단은 단양쪽에서 동로면 적성리를 경유 점촌․안동으로 진출하기 위해 1개연대 병력이 벌재에 포진하고 있었음.
이와같은 전선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배동걸 소령이 지휘하는 예하 한국군 특별공격부대로 하여금 단양에서 침투하는 적을 탐색, 격멸토록 명령을 발동하였고 동부대는 1월 12일 안동에서 적성리에 도착하여 경찰관 16명, 대한청년단특공대원 42명과 함께 전투에 임하였음.
戰鬪經過
적은 1월 13일 05:00경 꽹과리와 북소리를 신호로 1차공격을 시도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5차례의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해 왔으나, 그야말로 철통같은 전면방어 형태의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한 아군에 밀려 1월 15일 11:30 단양 방면으로 퇴각함으로써 아군의 일방적인 대승리로 끝이 난 전투임.
이 전투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적 제10사단을 상대로 현지 사정에 밝은 대한청년단원과 경찰관등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적 1개연대 규모의 병력을 섬멸시킨 전사(戰史)에 길이 빛나는 대승리로 기록되고 있음.
戰鬪槪要
일 시 : 1951. 1. 13~1. 15
장 소 :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적 군 : 북괴군 제10사단 예하 1개연대병력 3,000명
아 군 : 미 제10군단 예하 한국군 특수임무대대 병력 300여명 (대대장 소령 배동걸)
※ 경찰관 16명, 민간인 : 대한청년단특공대장 임환기외 41명
전 과 : 적사살 1,247명, 포로 : 군관7명 ․ 사병 72명, 소총 370정, 박격포(82mm) 2문
손 실 : 전사 9명, 부상 2명, 미군부상 2명, 미간인부상 4명, 경찰부상 2명, 특공대 원전사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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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그 정을 잊지 못해 아들이 세운 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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