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좋아...

인천 문학산에서(2025.3.30)

홍길동이 2025. 3. 30. 19:50

어제와 같이 인천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아침에 연희 공원 옆 공촌천을 따라 산책할때는 손이 조금 시럽기도 하다. 목련이 새봄맞이 나왔다 냉해를 입어 누렇게 변한곳도 있다.

 학이 날개를 펴고 앉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해발 217m 의 문학산은 인천도호부 관아의 남쪽에 위치했다 하여 ‘남산 (南山)’이라고도 하고, 봉수대가 있어 그 모양이 마치 배꼽 같다 하여 ‘배꼽산’이라고도 했다. 고대 왕국이었던 미추홀의 진산이지만 1965년부터 50여 년간 군부대가 주둔한 이유로 정상에 오를 수 없었으나 2015.10.15일 시민들 에게 개방되었다. 문학산은 미추홀 구와 연수구에 걸쳐 있고 정상에 오르면 서울의 남산과 인왕산, 북한산까지 보인다. 5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보존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인천의 산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학 장미 공원

진달래도 피고...
연리목
문학산성

1986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13m의 산정부를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 에워싼 석축산성 이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남산석성(南山石城)이라 하여 둘레가 160보(步)이고, 성안에 봉수대가 있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남산고성(南山古城)의 둘레가 430척(尺)이라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이 성을 비류(沸流)의 옛 성이며, 성안에 비류정(沸流井)이란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인천읍지』에서는 이 성을 미추홀(彌鄒忽) 고성이라 하고, 임진왜란 때 인천부사 김민선(金敏善)이 옛 성을 수축하여 지키면서 여러 차례 왜적을 무찌르다가 병으로 죽자, 김찬선(金纘善)이 이어받아 끝까지 성을 지켰으며, 동문 밖 100여 보 되는 곳에 왜군이 쌓은 성터가 있다고 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577m이고, 이 가운데 현존하는 부분은 339m나 된다. 이 중 육안으로 성벽을 알 수 있는 부분은 220m인데, 성벽의 높이는 약 1.5m∼4m로 남았다. 성벽은 장방형의 면을 가지도록 수평고임쌓기로 정연하게 축조하였다. 성벽의 외측 기단 아래에서는 2∼3단을 안쪽 방향으로 10∼15㎝씩 들여쌓거나, 경사가 완만한 기초부의 보강축조가 있어 견고하다.
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동쪽에 작은 수구(水口)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동문에서 서북쪽 150m 지점에 우물이 있었으나 매몰되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정상의 동측 아래로 김민선을 모신 사당인 안관당(安官堂)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성안에서 삼국시대 이래의 토기편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작은 문학산성에서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것은 역사상 특이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돌먹는 아까시 나무

문학산 정상(213m)표지석.

문학산 전망대에서 본 인천시내 뷰

문학산 정상 전망대에서 본 인천대교

문학산 역사 박물관..개방 전 군 부대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문학장미공원                                      # 돌먹는 나무 # 문학산성